점점 희미해져도… 끝끝내 붙잡아야 할 기억

오경진 기자
오경진 기자
수정 2025-02-20 23:50
입력 2025-02-20 23:50

영원에 빚을 져서/예소연 지음/현대문학/148쪽/1만 5000원

실종된 친구 찾는 여정 속에서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 떠올려
묻어뒀던 공동체 상처 되짚으며
죽음을 대하는 태도 다시금 질문
생성형 인공지능(AI)에게 ‘사회적 참사를 공동체가 애도하는 모습을 그려 줘’라고 입력해서 얻은 이미지. 현대문학 제공
생성형 인공지능(AI)에게 ‘사회적 참사를 공동체가 애도하는 모습을 그려 줘’라고 입력해서 얻은 이미지.
현대문학 제공


살면서 상처가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껏 그것을 빠르게 ‘치료’하는 데 급급했다. 때때로 어떤 상처에는 ‘치유’가 필요하다. 그것을 제대로 바라보고 천천히, 충분히 아파해야 한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상처라면 더욱 그렇다. 여기서 하나 피어오르는 질문. ‘충분히 아파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영원에 빚을 져서’의 작가 예소연. 현대문학 제공
‘영원에 빚을 져서’의 작가 예소연.
현대문학 제공



소설가 예소연(33)의 신작 ‘영원에 빚을 져서’는 조금은 불편한 소설이다. 너무 아파서 묻어 뒀던, 너무 힘들어서 제쳐 뒀던 기억을 불러오기에 그렇다. 그리고 독자에게 제안한다. 이거 한번 제대로 보자고. 그냥 쉬쉬할 일이 아니라고. 그랬다간 또 아파해야 한다고. 또 아프지 않기 위해서는 오히려 지금 충분히 아파해야 한다고. 이런 소설가의 제안이 읽는 내내 달갑지만은 않았다. 아프고 힘들어서다. 그러나 여기저기 병들어 있는 우리의 진짜 문제는 어쩌면 ‘제대로 아파할 줄도 모르는’ 데 있는 것 아닐까. 여기에 공감한다면 한번 들춰 봐도 괜찮은 소설이다.

“신이 있다면 세상이 이렇게 될 리 없어.”(93쪽)

소설에서 중요한 인물은 크게 네 사람이다. 혜란과 동, 석, 그리고 캄보디아인 삐썻이다. 이야기는 동의 시점으로 풀어 간다. 대학 시절 동, 혜란, 석은 학점을 따기 위해 캄보디아 프놈펜 바울학교로 봉사활동을 갔다가 친해졌다. 그러나 현지에서 느끼는 환멸이 점점 깊어진다. ‘봉사’라는 거창한 이름이 달린 이 활동은 정말 그렇게 불릴 자격이 있는가. 이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앞에 서 있는 우리는 누구를 가르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이런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채 셋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각자의 삶을 살면서 바쁘게 살아가던 어느 날, 석이 실종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석이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은 바로 캄보디아. 동과 혜란도 무엇인가에 이끌려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리고 거기서 삐썻을 만난다. 삐썻은 과거 석과 깊은 교감을 나눴던 사이. 다시 돌아간 캄보디아에서 동과 혜란은 오랜만에 만나는 삐썻과의 대화를 통해 석의 행방을 유추하기 시작한다.





“참사는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반복될 거야. 이렇게 잊히기만 한다면 말야.”(60쪽)

예소연은 기어이 ‘참사’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22년 이태원 참사. 소설의 원고가 이미 마감됐을 지난해 말에는 무안국제공항에서 181명을 태운 제주항공 여객기가 활주로를 이탈해 179명이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예상할 수도, 가늠할 수도 없는 사고들이 일상에 불청객처럼 들이닥친다. 그리고 인간의 실존과 사회의 정의와 국가의 역할이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인간의 생명은 우리가 가장 나중까지 지켜야 할 지고의 가치이지만, 그것은 언제든 사고로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다.

동, 혜란, 석이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을 2014년, 한국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당시 삐썻은 캄보디아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해 준다. 2010년 프놈펜에서 축제 기간 벌어졌던 대규모 압사 사고. 축제장에 먼저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수백명이 다리에 갇힌 채 깔려 죽었다. 석이는 당시 삐썻에게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 뭐 그런 죽음이 다 있어”(58쪽)라고 말했지만, 그런 죽음도 있는 것이다. 삐썻은 “미안해요. 그런데, 어떤 죽음은 그런 식이기도 해요. 다를 게 없어요.” 중요한 건 이런 죽음들을 대하는 공동체의 태도다.

그렇다고 예소연의 소설이 독자더러 ‘어떻게 해야 한다’는 투로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죽음과 그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고스란히 바라볼 뿐이다. 죽음도, 참사도, 아픔도 언젠간 잊힐 것이다. 그렇다고 쉽게, 일부러 잊지는 말자는 단단한 다짐. ‘충분히 아파한다는 것’은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예소연은 2021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신예다. 최근 최연소의 나이로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것 외에 문지문학상, 황금드래곤문학상, 이효석문학상(우수작품상)을 받으며 탄탄한 문학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오경진 기자
2025-02-21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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