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텃밭·민주 성지 들끓는 민심
대구 야권·시민단체 尹 퇴진 시위대학가에도 곳곳에 ‘탄핵’ 대자보
‘광주시민 비상시국대회’ 열고 규탄
5월 단체 “또 피를 봐야 하나 싶어”
대구 뉴시스
“나라 운영이 장난인교? 요즘이 어느 시댄데 이런 정신 나간 짓을 한단 말이고.”
4일 오전 ‘보수 민심의 바로미터’라고 불리는 대구 중구 달성로 서문시장. 이곳에서 만난 건어물상 이호선(57)씨는 전날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잘하겠다고 해서 나라를 맡겨 놨더니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놨다”면서 “대통령이 한밤에 내란을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상인과 시민들은 가게 문을 열자마자 삼삼오오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전날 벌어진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호떡을 팔던 한 상인은 고객에게 “‘전쟁 나는 것 아니냐’고 울면서 걱정하는 딸을 달래느라 한숨도 못 잤다”고 토로했다. 일부 상인들은 좌판에 앉아 유튜브를 검색하며 전날 벌어진 일을 뒤늦게 챙겨 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에 보수의 심장인 대구 민심도 싸늘하게 돌아섰다. 대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75.14%라는 압도적 지지를 보냈던 곳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서문시장에서 약 10년째 빵과 음료를 파는 강진욱(50대)씨는 “서민들은 경기가 안 좋아서 죽을 지경인데 어떻게 저런 비정상적인 생각을 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빵을 사던 손님은 “술김에 저지른 일 아니겠냐”며 거들었다.
이날 대구지역 야권과 시민사회단체도 동대구역과 대구시청 앞에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집회 참가자 100여명은 ‘윤석열 OUT’, ‘윤석열은 퇴진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퇴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앞서 지역 노동계와 법조계도 성명을 내고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반발했다. 분노한 대구 민심은 대학가에서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었다. 경북대 캠퍼스에는 윤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대자보가 곳곳에 붙었다. 한 사범대생은 “국민이 동의하지 못하는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은 국민 앞에 설 자격이 없다. 당장 사과하고 스스로 거취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시민들도 45년 만의 비상계엄 선포에 충격과 공포감 속에 밤을 새웠다. 1980년 5월 계엄령으로 군홧발에 도시 전체가 유린당한 경험이 있는 광주시민들은 “악몽이 되살아난 듯한 밤”이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만난 시민 김모(59)씨는 “비상계엄 발동 뉴스를 보는 순간 계엄군의 총칼에 짓밟힌 ‘5월 광주’가 떠올랐다”면서 “그날의 공포가 떠올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27개 단체로 구성된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이날 오전 5·18민주광장에서 ‘광주시민 비상시국대회’를 열고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이들은 공동성명을 내고 “국민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 윤석열 일당을 즉각 구속하라”고 촉구했다. 새벽부터 5·18민주광장에 나온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5·18 당시 계엄군에게 가족을 잃은 오월 어머니들은 ‘또다시 피를 봐야 하나’ 싶었다”면서 “광주시민은 반드시 윤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학창 시절 5·18을 겪었다는 박모(62)씨는 “고등학생 때 도청에 장갑차가 진입하고 헬기가 날아다니며 군인들이 시민에게 총구를 겨누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그런 비극을 다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분노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따르면 5·18 당시 광주에서 계엄군에 의해 166명이 사망하고 76명이 행방불명됐다. 부상자 수도 2617명에 달했다.
대구 민경석·광주 홍행기 기자
2024-12-05 12면
관련기사
-
野, 탄핵소추안 발의
-
尹 “계엄 불가피했다”
-
“국회 기능 무산 시도한 내란죄” “해제요구 응해, 국헌 문란 아냐”
-
與 ‘尹탄핵 반대’ 당론 못 박아… 野 “불법 계엄령” 퇴진 속도전
-
金여사 특검 궁지 몰렸었나… 무리수 넘어 ‘정치적 자해’ 대체 왜
-
특전사·수방사 280여명 투입… 대치 속 무력 진압은 없었다
-
국무위원 다수 사전에 몰랐다… 경찰 통제에 의원들 국회 담 넘어
-
육사 4인방, 계엄령 핵심 역할… 김용현 “국민께 송구” 사의 표명
-
‘6인 체제’는 탄핵 심판 부담… 국회 ‘3명 공석’ 헌법재판관 임명 속도
-
“장기적으로 韓 증시 진정될 것”… 향후 주가, ‘예측 가능성’에 달렸다
-
“대외 신인도 떨어질라” 기업 긴급회의… “불안해 죽겠다” 시민들 통조림 사재기
-
‘계엄 쇼크’에 4000억원 던진 외국인… 정부, 10조 증안펀드 준비
-
계엄사가 국회·헌재 무력화 나서도 막을 장치 없어… 계엄 해제 시기도 불분명
-
현직 검사 “직권남용 수사해야”… 현직 판사 “위헌적 쿠데타”
-
이상민·조규홍·송미령 ‘계엄 국무회의’ 갔다… 참석 여부 질문에 최상목·오영주 ‘묵묵부답’
-
한동훈, 질서 있는 수습 ‘키’ 잡아… 조기 대선 갈림길에 서다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