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도 물가도 30년간 안 올라… ‘나 홀로 디플레’ 허덕이는 日

김진아 기자
수정 2021-11-21 18:42
입력 2021-11-21 17:54
디플레이션 함정에 빠진 일본
韓 임금 58% 오를 동안 日 10% 떨어져“여윳돈이 없는데 어떻게 쇼핑을 하겠나”
백화점엔 손님 없고 저가 매장만 붐벼
아베노믹스 효과 없이 원자재 부담 커져
“일본 기업 경쟁력 저하로 임금 못 올려”
토요일인 지난 20일 저녁 일본 도쿄 시부야의 한 잡화 가게에서 쇼핑을 즐기던 주부 고사카(32)가 일본 젊은층이 돈을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주말의 시작인 이날 코로나19 감염 우려도 잊은 듯 젊은층이 가장 많이 모이는 시부야 거리는 가만히 서 있어도 저절로 떠밀려 갈 정도로 붐볐다. 하지만 같은 유통이라도 업태에 따라 경기 편차가 컸다. 고가를 취급하는 세이부백화점은 손님보다 직원이 많았고 반대로 저가 유니클로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일본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0.1% 상승했다. 한국 3.2%, 미국 6.2%, 독일 4.5%, 중국 1.5% 등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치이지만 9월(0.2%)에 이어 2개월 연속 상승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올해 일본의 소비자물가는 주요국 가운데 유일하게 매달 마이너스 행진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물가와 임금만 빼고 다 오른다’고 조롱할 정도로 일본 경제는 90년대 버블(거품)이 꺼진 이후 30년 가까이 ‘디플레이션 함정’에 빠져 있다.
임금도 오르지 않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1997년을 100으로 했을 때 지난해 일본의 급여는 90.3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158을 기록했다. 한국 직장인 급여가 58% 오르는 동안 일본은 10% 하락했다는 의미다. 코로나19는 일본의 임금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후생노동성이 종업원 100명 이상 기업 1708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임금을 인상하거나 올릴 예정인 기업은 80.7%로 지난해보다 0.8% 포인트 낮아졌다.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경제 대국이지만 임금 상승률은 제자리로 속 빈 강정이라는 평가다.
유가 상승 등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 압박을 받고 있지만 이처럼 일본만 나홀로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것은 내수 의존도가 강한 일본에서 기업이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상품에 반영하지 않고 대신 임금도 올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구마노 히데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일본에서는 기업이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가 외면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어 원자재 가격이 급격히 올라도 참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과거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실시한 대규모 수출 부양정책인 ‘아베노믹스’는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엔화 약세로 원자재 수입 부담만 키웠다. 지난 17일 달러당 엔화는 114.97엔까지 떨어지는 등 4년 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 세계와 역행하는 일본의 이런 상황이 더이상 지속되기는 어려운 만큼 결국 인플레이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가 최근 원유 가격 상승으로 휘발유 가격이 일정 수준을 넘게 되면 정유사에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도 인플레이션 대응책이지만 시장 왜곡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명중 닛케이기초연구소 주임연구원은 “물가가 오르기 위해서는 임금이 올라야 하는데 임금이 오르지 않는 근본적 원인은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며 “경쟁력이 약해진 기업이 투자도 하지 않으니 생산성이 오르지 않고 임금도 증가하지 않아 고용 불안에 비정규직만 증가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 김진아 특파원 jin@seoul.co.kr
2021-11-22 12면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