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미술관]17.‘Transliteration-감영터’

박현갑 기자
수정 2021-09-28 10:46
입력 2021-09-27 19:30
관점 차이 속 기호로 세상을 읽어내다
‘Transliteration-감영터’라는 고산금(55) 작가의 2020년 부조작품이다. 재료는 스테인리스 스틸이다. 작품 크기는 가로 9m에 세로 3m이다. 구슬 하나의 직경은 7cm이다.
감영은 조선시대 각 도의 관찰사가 업무를 보는 곳으로 지금의 광역시청이나 도청에 해당한다. 조선에는 이 곳 경기 감영 등 8곳의 감영이 있었다. 경기 감영터는 서울 돈의문 3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공사 중 발견됐다. 경기 감영은 현재의 서울적십자병원 주차장 일대로 파악되며, D타워 빌딩 자리에는 경기 감영의 부속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바꿔씀’이라는 작품명에서 드러나듯 작품에 사용된 구슬 하나는 글자 하나를 의미한다. 띄어쓰기를 적용, 문장과 문단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맨 오른쪽 줄에 세로로 늘어선 구슬은 모두 18개인데 ‘경기 감영터 센터포인트 돈의문’이라는 뜻이다. 세로로 활자가 박힌 듯한 책 모양에 호기심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쏠릴만하다. 아쉽게도 작품 안내판은 보이지 않는다.
텍스트를 구슬로 치환해 부조로 만든 경위가 궁금해 물어봤다. 고 작가는 한 때 눈이 잘 안보인 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학창시절 활자중독환자였다고 할 정도로 책 읽기를 좋아했다. 지하철을 탈 때에도 신문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이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1993년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갔다가 귀국할 무렵인 97년에 실명위기에 놓이게 됐다. 시야가 흐릿해지면서 바깥 소식이 궁금해 신문, 잡지 등을 보게됐고 자신이 본 내용을 작품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텍스트를 자신만의 기호로 이미지화하게 됐다. 그는 지금은 작품활동을 하는데 있어 시력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주변사람과 대화를 하다보면 말하는 사람의 관점과 나의 관점이 다를 때가 있다. 그런데 딱히 꼬집어 그 차이를 말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고 작가의 작품은 이처럼 표현하지 못하는 아쉬운 감정에 대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읽는 행위를 통해 텍스트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자신만의 코드로 세상을 읽어내듯, 고 작가의 스테인리스 구슬이나 인주구슬로 된 작품을 보는 관객들 또한 이 작품들을 보면서 각자의 아쉬운 감정 읽기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글·사진 박현갑 eagledu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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