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졸업식 못 보고 떠난 엄마…그 곁 못 떠난 뇌병변 아들
기민도 기자
수정 2018-01-29 10:15
입력 2018-01-28 22:16
안타까운 사연·꼬리무는 조문
28일 경남 밀양은 침통함으로 가득 찼다. 지난 26일 세종병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38명이 목숨을 잃은 까닭이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났는데도 장례식장이 꽉 차 사망자 11명에 대한 빈소조차 마련되지 않았다는 소식은 밀양시민들을 더욱 눈물 짓게 했다.밀양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화재로 숨진 간호조무사 김모(37·여)씨가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녔다는 사실도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김씨는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끝내 유독가스에 쓰러지고 말았다. 화재가 발생한 지 10분이 지나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살려 달라”고 외친 것이 그의 생전 마지막 목소리였다. 행복한병원 정형외과 과장인 민모(59)씨는 세종병원에 당직 근무를 서러 갔다가 화를 당했다. 민씨도 환자를 구하기 위해 뛰어다니다 출구를 몇m 앞둔 1층에서 숨을 거뒀다.
생존자들은 당시 ‘아비규환’의 상황을 또렷이 기억했다. 밀양윤병원에 입원 중인 양중간(68)씨는 계단으로 대피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다른 환자 3명과 함께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 뒤 구조대가 놓은 사다리를 타고 건물을 벗어났다. 양씨는 “복도에서 마주쳤던 환자들이 모두 숨을 거뒀다”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데리고 나왔을 텐데”라며 자책했다. 그는 “어디서 자꾸 타는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등 아직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정동하(57)씨는 처제로부터 ‘어머님 입원한 병원에 불났어. 살려줘’라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즉각 사다리차를 몰고 병원으로 달려가 10명의 환자를 구했다. 정씨의 처남과 아내도 현장으로 달려와 환자를 구했다. 하지만 정씨 가족은 정작 병원 3층에 있던 정씨의 장모는 구하지 못해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밀양문화체육회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전날부터 이날까지 5000여명의 조문객이 다녀갔다. 유가족들은 다시 한번 분향소를 찾아 눈물을 흘렸고, 시민들도 함께 슬퍼하며 영정 앞에 국화꽃을 놓았다.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유족 30여명도 분향소를 찾아 헌화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류건덕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유가족대책위원회 대표는 “세종병원 화재를 보며 너무나 가슴이 아팠고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다”면서 “세종병원 유가족들이 대책위원회를 꾸리면 돕겠다”고 말했다.
조문객 행렬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아주 가깝게 지냈던 지인을 영정으로 마주하게 된 한 시민은 한참 동안 영정 속 얼굴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대형 화재의 영향 탓인지 이날 밀양시내는 한산했다. 주말인데도 전통시장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고 활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문을 닫은 곳도 많았다. 한 과일가게 상인은 “밀양이 소도시다 보니 모두 남일 같지 않게 여긴다”면서 “가게 문을 열고 있는 것도 참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밀양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밀양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2018-01-2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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