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수사를 맡았던 대검찰청 중수부장 출신 이인규 변호사가 돌연 8년간 근무하던 로펌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출국한다. 이를 두고 이인규 변호사가 검찰의 적폐청산 대상으로 꼽히는 ‘논두렁 시계’ 수사를 피하기 위해 출국하는 것 아니냐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논두렁시계 보도, 국정원 주도’ 주장 이인규 “미국 갈 계획” 연합뉴스
이 변호사는 16일 기자단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논두렁 시계 보도’ 조사를 회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도피한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면서 “로펌을 그만 둔 것은 경영진 요구에 따른 것으로 앞으로 미국에는 가족을 만나러 다녀올 생각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언제 복귀할 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경기 용인 출신으로 서울 경동고,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이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14기를 수료한 후 1985년 서울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2009년까지 24년간 검사로 지냈다. 법무부 검찰과장, 서울지검 금융조사부장, 대검 범죄정보기획관 등을 거쳐 2009년에는 대검 중수부장으로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맡았다.
이 변호사는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1개월 반 만인 같은 해 7월 사표를 내고 법무법인 바른에 합류했다. 사직한 시점은 지난 6월 말로 바른에 합류한 지 만 8년 만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논두렁 시계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경위를 조사하겠다고 밝힌 때와 거의 일치한다.
논두렁 시계 사건 당시 SBS 보도
국정원 개혁위가 국정원 적폐 중 하나로 보고 있는 ‘논두렁 시계’ 사건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가 한창이던 2009년 5월 13일 SBS 보도를 시작으로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하며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언론은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한테서 회갑 선물로 1억원짜리 명품시계 두 개를 선물을 받았는데, 검찰이 이에 관해 묻자 노 전 대통령이 “아내가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대검은 보도 내용에 대해 “그와 같은 진술을 확보한 바 없고, 악의적 언론 제보자는 반드시 색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색출되지는 않았고, 실체 없는 사건의 보도로 노 전 대통령 측의 명예는 크게 훼손됐다. 이를 두고 검찰이 전직 대통령을 수사하면서 별다른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자 시간을 끌며 망신주기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은 보도 이후 열흘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소환 조사를 받던 날 오후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청사 구내식당으로 가던 중 취재 준비로 한창인 청사 밖을 내다보고 있다. 웃는 듯의 그의 표정을 두고 당시 말이 많았다. 2009.4.30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회고록 ‘운명’에서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차를 한 잔 내놓았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라고 적었다.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는 것이 세간에 알려지자 이 변호사는 “공손하게 했지만 수사팀 자체에 대한 반감 탓에 그렇게 느낀 것 같다”고 이를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