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美에 ‘5공헌법 수호 지지’ 요구하다 퇴짜…25만쪽 외교문서 공개
장은석 기자
수정 2016-04-17 15:29
입력 2016-04-17 12:13
망명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1985년 총선 앞두고 귀국 연기 종용
전두환, 日교과서 시정요구 배후로 北 지목…북일관계 개선 견제김일성 “소련은 믿을 수 없고 중국은 믿지않아” 강대국에 불신감
전두환 정권이 1985년 당시 대통령 간선제와 7년 단임제를 골자로 한 5공화국 헌법에 대한 개헌 요구가 거세지자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에 ‘호헌’(護憲,5공 헌법 수호) 공개 지지 표명을 요구했다 거절당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전 전 대통령은 주한 미국대사에게 직접 ‘헌법 수호를 통한 평화와 안정을 위한 노력에 대해 레이건 대통령이 확고하게 지지하는 성명을 해 주기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미측은 “한국의 국내 정치에 간섭한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며 끝까지 난색을 보였다.
한편, 노신영 당시 국무총리는 같은 해 10월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간담회에서 미국 의원들의 정치발전 및 인권 관련 질문에 “김치와 콩나물국을 먹는 한국인에게 매일 치즈와 버터, 우유를 먹도록 강요한다면 소화를 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2016.4.17
외교부 제공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는 ‘전두환 대통령 미국 방문’, ‘김대중 귀국’ 등 1985년에 생산된 문서가 중심이며, 1980년과 그 이전의 외교문서 가운데 일부도 재심의를 통해 공개 대상에 포함됐다.
전두환, 레이건에 지지 요구하다 퇴짜당해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전두환 정권은 1985년 4월 24∼29일 전 전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한미 정상회담 후 언론 발표 과정에서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한국 정부의 호헌에 대한 공개 지지 표명을 해줄 것을 미국 측에 집요하게 요청했다.
이 같은 한국 정부의 요청은 같은 해 ‘2.12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급부상한 신민당 돌풍을 계기로 한국에서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거세진 시점에 나온 것이다.
같은 해 4월 초 양국 정상간 언론발표문(press remarks) 교섭에 들어간 우리 정부는 레이건 대통령이 발표할 문안에 전 대통령의 ‘헌정수호 결의’를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을 것을 요구했다.
전 전 대통령은 4월 12일 주한 미국대사와의 오찬에서 직접 ‘헌법 수호를 통한 평화와 안정을 위한 노력에 대해 레이건 대통령이 확고하게 지지하는 성명을 해 주기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4월 25일 저녁 미국 현지에서 열린 한미 외무장관 회동에서도 줄다리기는 계속됐다.
이원경 당시 외무장관은 전 전 대통령이 헌정질서 유지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며 거듭 지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배석한 폴 월포위츠 국무부 당시 동아태 차관보는 “한국 내에서 헌법 개정 문제가 정치 문제화돼 있는 것으로 아는데, 미국이 이 문제를 언급하면 한국의 국내 정치에 간섭한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고 맞섰다.
결국 최종 발표문은 레이건 전 대통령이 헌법 문제에 대한 언급 없이 한국의 정치 발전을 위한 제반 조치를 지지하고, “전 대통령이 임기 말에 하겠다는 평화적 정권교체 공약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재차 강조”하는 선에서 타결됐다.
이후 전 전 대통령은 1987년 4월 13일 일체의 개헌 논의를 중단시키고 현행 헌법을 유지한다는 내용의 4.13 호헌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개헌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자 전두환 정권도 어쩔 수 없이 4.13 호헌조치를 철회하고, 같은 해 6월 29일 민정당 대표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6.29 선언을 발표하면서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다.
미국 “전두환 외 대안 없다” 인정
아울러 미국이 5·18 민주화 항쟁을 유혈 진압하고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의 불가피성을 인정한 사실도 이번 외교문서 공개를 통해 드러났다.
외교부 제공
한국의 요청으로 미국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귀국을 만류
또 1982년 망명길에 올랐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5년 2월 총선 직전 귀국을 선언하자 한미 정부가 귀국 연기를 종용하기 위해 긴밀히 협의한 상황도 드러났다.
미국 정부는 김 전 대통령 측에 귀국 연기를 설득하는 한편, 한국 정부에도 사면, 유럽 방문 허가 등 상응하는 조치를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부는 김 전 대통령의 귀국이 그해 2월 총선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고, 귀국을 선거 이후로 연기하도록 종용할 방안을 미측과 긴밀히 협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6.4.17
외교부 제공
한국 정부는 김 전 대통령의 귀국 문제가 그해 4월로 협의가 이뤄지던 전 전 대통령의 방미(일명 ‘태평양 계획’)에 영향을 줄 것을 극도로 우려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이와 함께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4년 당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한 시정 요구를 ‘북한이 한일간 이간을 노리고 배후 조종한 데 따른 행위’로 규정하고, 국내 언론의 관련 보도를 통제하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 전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고교용 역사교과서 검정 내용을 공개하기 4달 전인 1984년 2월6일 외무부에 대응 지침을 담은 자필 문서 한 장을 내려보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일본 역사교과서 시정을 요구하는 움직임을 북한이 조총련과 일본 좌익계 노조 및 지식인 등을 이용해 한일간의 이간을 노리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한국의 언론은 이에 편성하지 않도록 협조하시요”라고 지시했다.
아울러 전 전 대통령은 1984년부터 남북대화를 추진하면서도 북한과 일본의 관계개선은 방해하는 전략을 구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 전 대통령은 그해 1월 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일본의 대북관계를 계속 예의주시하고 1984년 9월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모처럼 이뤄진 양국 간 좋은 관계가 일본 측의 필요 이상의 대북 접근을 통해 깨지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지시했다.
이밖에 캄보디아의 노로돔 시아누크가 리처드 홀브룩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만나 김일성 주석과의 면담 사실을 알리면서 김 주석이 자신에게 “소련은 믿을 수 없고, 중공(중국)은 믿지 않는다”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원본은 서울 서초구 외교사료관 외교문서열람실에서 열람할 수 있다. 외교부는 1994년 이래 30년이 지난 외교문서 가운데 2만여권, 270만여쪽을 공개했으며, 앞으로도 국민 알 권리와 학술연구 등을 위해 보존기한이 지난 외교문서를 심사를 통해 지속해서 공개할 방침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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