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수선화 생각/이경형 주필

기자
수정 2016-03-14 19:04
입력 2016-03-14 18:08
꽃샘바람이 수선화 잎들을 흔들고 있다. 아직 꽃대를 올리지 않은 수선화는 바람을 막아 줄 이불을 잃었다. 경칩 때 봄맞이 단장을 한답시고 정원에 쌓인 낙엽을 너무 일찍 걷어 낸 것이다. 영하를 넘나드는 추위 속에서도 수선화는 가운뎃손가락만큼 자랐다. 잎줄기 다발이 도톰해 들여다보니, 노란 꽃들을 배고 있었다. 앙상한 나뭇가지만 있는 정원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전령이 될 것 같다.

남향받이에 자리 잡긴 했지만, 몸을 잔뜩 움츠린 채 가늘게 떨고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신화 속의 나르시스이다. 잘생긴 목동은 여러 요정들로부터 구애를 받지만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다가 끝내 물에 빠져 숨졌다. 그 목동이 있던 자리에 피어난 꽃이 수선화가 아니었더냐.

가슴을 닫고 자신을 칭칭 동여맨 사람은 쉽게 외로움에 빠진다. 화가 솟구쳐도 안으로 삭이는 법을 배우고, 남이 내 속에 들어오겠다면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삶이다. 나르시스처럼 자기 속에 모든 것을 가둬 버리면 수선화의 꽃말인 고결함과 신비함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경형 주필 khlee@seoul.co.kr
2016-03-1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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