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암행 경찰/박홍환 논설위원

박홍환 기자
수정 2016-03-02 23:51
입력 2016-03-02 23:08
“남문에서 출두야, 북문에서 출두야, 동문 서문에서 출두 소리 천지를 진동하니 … 사방팔방에 박 깨지는 소리 절로 들리네.” 춘향전의 클라이맥스는 단연 암행어사 출두 대목이다. 비루한 행색의 이몽룡이 허리춤에 감춰 뒀던 마패를 번쩍 집어 들어 암행어사 출두 사실을 알리는 순간 남원부사 변학도를 비롯해 백성의 고혈을 빼먹던 탐관오리들은 넋이 나갈 수밖에. 모르긴 몰라도 이런 걸 청천벽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국왕의 밀명을 받은 암행어사들은 폐의파립(?衣破笠·남루한 옷과 찢어진 삿갓) 행색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비밀리에 움직이며 탐관오리들을 적발했다. 암행어사 파견에 대해서는 반대도 많았다고 한다. 중종실록에는 영가부원군 김수동이 왕에게 “암행어사를 보내 수령의 범죄를 적발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자제를 당부한 것으로 돼 있다.

왜란과 호란 등을 거치며 왕권이 쇠약해진 조선 말기에는 가렴주구를 일삼는 지방관들도 많아져 암행어사 파견이 점점 빈번해졌고, 제도적으로 정착되기까지 했다. 국왕은 3정승으로부터 추천받은 인사 중 암행어사를 고르는 한편 이들의 파견 지역 또한 무작위 추첨 형식으로 정했다. 암행어사는 국왕에게서 직접 파견 지역이 밀봉된 서류와 마패 등을 지급받은 당일 목적지로 출발했다.


표적 감찰이 아닌 데다 언제 암행어사가 출두할지 모르는 만큼 암행어사에 대한 탐관오리들의 공포심도 컸을 법하다. 실제 암행어사들은 풍찬노숙하며 파견 지역 민심을 정탐한 뒤 관헌에 출두해 서류 등을 검열하고, 민원을 직접 청취해 지방관들의 잘잘못을 따졌으며 복귀 후 국왕에게 낱낱이 서면으로 보고했다.

고려시대에도 관리들의 행태를 규찰하는 감찰어사를 지정해 운용했지만 이들의 암행 단속은 인정하지 않았다. 암행 단속과 공개 단속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은밀하게 자행되는 불법행위일수록 공개 단속을 통해서는 적발하기 어렵다. 요즘에도 암행감찰을 통해 공직사회에 경각심을 불어넣는 이유다.

그제부터 경찰이 암행순찰차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암행경찰’인 셈인데 도로 위의 무질서가 오죽하면 암행순찰차까지 등장했는지 스스로 부끄럽다. 첫날 암행 단속이 벌어진 경부고속도로에서는 버스 전용차로를 운행한 승용차 등이 다수 적발됐다고 한다. 겉보기에는 일반 승용차가 분명한데 갑자기 경광등을 울리며 단속하니 많은 운전자들이 당황했을 것이다.



단속에 적발된 일부 운전자들은 “사고 나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 “함정 단속 아니냐” 등의 항변을 했다지만 버젓이 법규를 위반하다 현장에서 적발됐으니 꼼짝없이 범칙금을 물고, 벌점까지 받아야 할 판이다. 암행순찰차와 암행경찰, 스스로 법규만 잘 지키면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2016-03-0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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