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트렁크 살인’ 김일곤 “개 안락사 약 달라” 난동 부리다 잡혀
최훈진 기자
수정 2015-09-18 02:23
입력 2015-09-17 23:18
범행 현장서 4㎞ 떨어진 동물병원 찾아 세 차례 처방 거절당하자 흉기로 위협 원장·간호사, 문 잠그고 신고하자 도주 수색 중이던 경찰과 5분간 격투 벌여
‘트렁크 살인’의 피의자 김일곤(48·전과 22범)이 범행 8일 만인 17일 경찰에 붙잡혔다. 기초생활수급자이자 척수장애 3급 판정을 받고 매달 66만원의 복지수당을 받아 온 그는 범행 동기에 대해 “차량과 휴대전화만 훔치려고 했는데 (여성이) 화장실에 간다고 한 뒤 도망치려고 해 홧김에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밝혔다. 또 “과거 식자재 납품 일을 할 때 미수금을 제대로 주지 않았던 마트 주인들이 여성이었다”며 평소 여성에 대해 가져온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연합뉴스
검거 장소는 김씨가 지난 11일 주씨의 시신을 트렁크에 실은 차량에 불을 지른 장소인 성동구 홍익동의 한 빌라에서 4㎞ 정도 떨어진 지점이다. 회색 반소매 티셔츠에 파란색 면바지 차림을 한 김씨는 이날 오전 8시 30분부터 인근 S동물종합병원을 세 차례 찾아가 “무게 10㎏ 정도인 개를 안락사시킬 약을 달라”고 했으나 거부당하자 복대에 숨겼던 흉기로 수의사와 간호사를 위협한 뒤 도주했다. 김씨는 병원에서 1㎞ 떨어진 지점에서 병원 측의 112 신고를 듣고 수색 중이던 성수지구대 경찰관 2명과 시민들에게 제압당해 검거됐다. 김씨는 잡힐 때 길이 28㎝의 독일제 칼 두 자루와 문구용 커터칼 1개를 갖고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9일 주씨를 납치한 후 천안 두정동의 한 골목길에서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 진술에 따르면 그는 그날 낮 2시쯤 자신의 투싼 차량 운전석에 탑승하는 주씨를 밀치고서 목 부분을 눌러 제압했다. 힘을 잃고 쓰러진 주씨가 곧바로 의식을 되찾자 칼로 계속 위협한 채 한 손으로 운전하며 5분 만에 마트를 빠져나왔다. 20분 정도 운전해 두정동을 지날 때쯤 주씨가 ‘용변이 급하다’며 차에서 내려 도주를 시도하자 김씨는 그를 다시 조수석으로 끌고 와 목 졸라 살해했다.
이후 사흘간 김씨는 트렁크에 시신을 싣고 부산, 울산, 강원 양양 등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다. 김씨는 경찰에서 “(주씨) 신분증을 보니 집이 경남 김해기에 인근에 묻어 주려고 부산에 갔다”고 말했다. 잠은 차에서 해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극도로 흥분된 상태라 정확한 범행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여성은 약속을 안 지킨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김씨가 범행 이후에도 성동구 일대를 벗어나지 않은 이유와 안락사 약을 사려고 한 목적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날 오후 12시 39분쯤 성동경찰서로 이송된 김씨는 살해 동기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나는 잘못한 게 없다. 나도 살아야지”라고 소리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박성수 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피의자가 살해 후 여성의 시신을 훼손한 것을 보면 여성에 대한 막연한 증오를 가졌을 수 있다”며 “연쇄살인범 유영철도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어머니에 대한 애정 결핍으로 여성에 대한 복수심을 키웠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김씨를 검거한 성수지구대 경찰관 2명을 1계급 특진시킬 예정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2015-09-18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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