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 찾는 이 시대의 프루스트… “또 유럽” 비판도

수정 2014-10-10 04:56
입력 2014-10-10 00:00

노벨문학상 佛소설가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작품 세계

“모디아노는 과거로 시간을 되감게 하는 우리 시대의 마르셀 프루스트(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작가)다.”

201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작품을 가리켜 프랑스 언론들은 “단순 명료한 단어들로 수많은 침묵을 내포하는 음악 같다”는 찬사를 쏟아냈다.
갈리마르 제공·AP 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프랑스 역사 소설가 파트리크 모디아노(69)의 작품 세계를 이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1945년 7월. 세계 2차대전 종식 2개월 뒤에 태어난 그는 독일 나치의 점령을 가리켜 “내가 자란 토양”이라고 했다. 그의 부모는 나치가 점령한 파리에서 서로 만나 신분을 감추고 함께 살았다. 이런 배경을 품고 있는 탓에 작가는 전쟁이 고국 프랑스에 남긴 고통스러운 기억과 어린 시절의 상흔을 집요하게 추적해 왔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인 1940~1944년 프랑스의 암흑시대, 보통 사람들의 핍진한 삶을 포착하는 데 작가로서의 생애를 바쳤다.


그는 단순 명료한 단어 사용, 깊은 여운과 적막한 슬픔을 남기는 문체로 기억과 상실, 정체성 등의 주제를 다양하게 변주해 왔다. 탐정소설을 즐겨 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기로 유명한 그는 지난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탐정소설의 기본 주제들은 소멸, 정체성의 문제, 기억 상실, 수수께끼 같은 과거로의 회귀 등 내가 집착하는 것들과 가깝다”고 말했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다루지만 유머를 잃지 않고 평범한 묘사조차 음악처럼 공명을 울리는 것도 특징으로 꼽힌다. 그의 저작 대부분을 번역해 온 김화영 문학평론가는 “그의 소설은 한결같이 한 가지 세계를 반복해 그려내는데, 그것은 2차대전 당시 점령 시대와 전후의 불안하고 동요에 찬 시기”라며 “그가 그리는 인물들은 빛바랜 사진 혹은 어둠 속에서 성냥불을 켜고 바라본 얼굴 같다”고 평했다.

하지만 과거로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그의 문학은 아이로니컬하게도 현실을 반추하게 하는 힘을 지닌다.



1982년 처음 모디아노의 대표작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었다는 전경린 작가는 이 책의 추천사에 “집요하게 과거를 추적하는 주인공들에 동행해 헛수고를 반복한 끝에 깨닫게 된 것은 뜻밖에도 현재라는 것의 매혹이었다”라고 썼다.

요즘 독자들에게 각광받는 작가는 아니라는 점에서 그의 수상은 한림원이 ‘순수문학의 가치’에 손을 들어준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재룡 숭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모디아노가 프랑스 문학에 중요한 역할을 한 건 확실하지만 현시대나 정치에서 동떨어져 전공자들을 제외하고는 독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작가”라며 “이번 노벨문학상의 선택은 모디아노라는 작가 자체보다는 순수문학에 대한 가치를 고집스럽게 지켰다는 점을 인정해 준 것 같다”고 짚었다.

1960년 파리 앙리4세 고등학교에 입학한 모디아노는 열다섯 살에 어머니의 친구였던 소설가 레몽 크노를 만나면서 문학에 눈을 떴다. 열여덟 살인 1963년 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했지만 공부를 중단하고 문학에 매진한 그는 1968년 첫 소설 ‘에투알 광장’으로 로제 니미에상, 페네옹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외곽 순환도로’로 1972년 아카데미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슬픈 빌라’로 1975년 리브레리상을, 1978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로 공쿠르상을 받았다.

그의 문학적 재능은 소설 외에도 영화, 어린이책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빛을 발했다. 1974년에는 그의 시나리오 ‘라콩브 뤼시앵’(루이 말 감독), 2003년에는 ‘본 보야지’(장 폴 라프노 감독)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2000년에는 칸영화페스티벌 심사위원도 역임했다. 어린이 그림책 ‘그 녀석 슈라에겐 별별 일이 다 있었지’도 발표했다. 이달에는 160여쪽에 이르는 최신작 ‘당신이 그곳에서 길을 잃지 말기를’을 펴내며 건재를 과시했다.

그러나 그의 수상으로 “노벨문학상이 유럽 잔치판”이라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20년간 수상자만 봐도 2003·2010·2012·2013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럽 작가들의 차지였다. 프랑스 국적 수상자로만 따져도 그가 14번째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2014-10-1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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