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번째 낙마… 朴정부 총리후보 ‘잔혹사’
수정 2014-06-25 04:15
입력 2014-06-25 00:00
김용준·안대희·문창극 인사청문회 전 사퇴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24일 자진 사퇴로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세 명의 총리 후보자가 취임 문턱을 넘지 못했다. 특히 2000년 2월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청문회 절차를 전후해 낙마한 총 6명의 총리 후보자 가운데 절반이 현 정부에서 발생, 인사의 난맥상을 보여 줬다.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제15대 국회에서 처음 인사청문회에 나선 것은 이한동 총리로, 여야 모두로부터 인심을 잃지 않은 덕분에 무난히 통과했다. 그 전에는 국회에서 총리 임명에 대한 표결 처리만 이뤄졌다. 청문회 제도 도입 후 중도에 낙마한 첫 총리 후보자는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장상 이화여대 총장. 2002년 7월 청문회 과정에서 주민등록상 위장 전입, 학력 허위기재, 부동산 투기, 장남의 이중 국적 문제 등이 쏟아지면서 인준안 표결에서 부결됐다. 한 달 뒤인 8월 장대환 매일경제신문 사장이 총리 서리로 임명됐으나 역시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의혹 등에 휘말리며 여소야대의 구도 속에서 국회 임명동의를 얻지 못했다.
참여정부 들어서는 고건, 이해찬, 한명숙, 한덕수 등 네 명의 총리가 청문회를 통과했다. 이명박 대통령 때에는 한승수, 정운찬, 김황식 등 세 명의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를 거쳤다. 김황식 총리에 앞서 2010년 8월 개각 때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총리로 지명되면서 ‘차기 후계 구도론’이 나왔다. 그러나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으로 야당과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다가 인사청문회 도중에 김 후보자 스스로 물러났다.
현 정부 들어 지난해 첫 총리 내정자인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아들 병역 문제, 내부 정보를 통한 부동산 매입 의혹 등으로 5일 만에 사퇴하고 만다. 안대희 전 대법관이 전관예우의 덫에 걸려 자진 사퇴한 뒤 문 후보자마저 물러나면서, 총리 후보자의 잇단 낙마는 장상, 장대환 후보자에 이어 12년 만이다. 김대중 정부 때 총리 후보자들은 각종 논란과 의혹 속에서도 국회 표결에서 부결됐으나 현 정부의 후보자 세 명은 표결도 못한 채 물러났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2014-06-25 2면
관련기사
-
日언론 “문창극 낙마, 한국정부 대일외교에도 영향”
-
서청원 “새로운 인사시스템 구축돼야”
-
국조실장 “과도기적 국정상황”…긴급 간부회의 소집
-
김태호 “김기춘, 총리인사 책임 자유로울 수 없어”
-
총리후보 연쇄낙마 계기 靑인사시스템 바뀔까
-
안철수 “편한 사람과만 일하려하면 통합 멀어져”
-
박영선 “청문회 못한게 국회탓?…대통령 유체이탈 화법”
-
김재원 “野, 인사청문 정쟁수단 삼으면 안돼”
-
박지원 “靑 비선라인 ‘만만회’ 움직인다는 얘기있어”
-
“문창극 사퇴는 비이성적 언론보도·정치권 싸움 탓”
-
현오석 “개각 진행중이지만 정책공백 없도록 만전 기해야”
-
이주영 발탁·정홍원 유임… 다시 說說
-
명예회복 원했던 文… ‘조부 독립투사’ 명분 얻자 전격 결심
-
엄포·강변·침묵… 마지막은 쓴소리
-
“朴대통령 수첩인사 탈피하고 야당과 협력을”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