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니뇨 악몽’ 생생한 페루, 사실상 전국에 비상사태 선포

수정 2026-11-06 17:05
입력 2026-11-06 17:05
강력한 폭우로 침수가 발생 툼베스주에서 주민들이 대피하고 있다. 엘코메르시오 제공


가뭄이나 홍수 등 엘니뇨가 촉발하는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볼리비아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데 이어 페루도 사실상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5일(현지시간) 페루 언론에 따르면 페루 중앙정부는 엘니뇨가 뿌릴 것으로 예상되는 강력한 폭우를 ‘임박한 위험’으로 규정하고 피해 위험에 노출돼 있는 1380개 지방자치단체에 60일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방자치단체는 1800개에 달하는 페루의 지방자치단체 중 70%를 웃돈다. 사실상의 전국적 비상사태 선포다.


페루 국가재난위험평가·예방센터(Cenepred)는 전체 인구의 약 3분의1에 해당하는 930만명 이상이 홍수와 산사태 등 엘니뇨가 유발할 수 있는 재해 위험에 노출돼 있다면서 필요할 경우 비상사태를 더욱 확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페루에선 이미 예고편 재해가 발생했다. 에콰도르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페루 북부 툼베스주와 피우라주에 일주일 전부터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피해가 속출했다. 국가재난위험평가·예방센터에 따르면 주민 324명이 피해를 입었고 최소한 110채 이상의 주택이 파손돼 거주 불능 상태가 됐다.

관계자는 “비상사태를 선포한다고 인위적으로 엘니뇨의 위력을 약하게 만들 수도 없고 피해를 100% 예방하기도 어렵겠지만 적어도 즉각적인 대응은 가능해진다”면서 “엘니뇨가 큰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전제로 주민과 기반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신속하게 취한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페루가 엘니뇨에 공포 수준의 반응을 보이는 건 1980년대 엘니뇨 악몽이 아직 생생하기 때문이다. 1982~1983년 엘니뇨의 심술로 재난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엘니뇨의 직간접적 영향으로 주민 9000여 명이 사망했다. 경제도 직격탄을 맞아 페루의 국내총생산(GDP)은 11.6% 급락했다.

문제는 이번 엘니뇨의 위력이 당시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점이다. 유엔은 2026~2027년 엘니뇨가 전례 없는 규모가 될 것이라고 최근 경고했다. 페루를 비롯한 중남미 각국의 언론은 2026~2027년 엘니뇨를 ‘슈퍼 엘니뇨’ ‘최강 엘니뇨’라고 부르고 있다.

엘니뇨는 적도 부근 해수면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면서 지역에 따라 가뭄이나 홍수 등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이번 최강 엘니뇨는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심술을 부리기 시작해 짧게는 내년 2월, 길게는 내년 6월까지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남미에선 이미 엘니뇨 피해가 현실화하고 있다. 비상사태를 선포한 볼리비아에선 비가 내리지 않아 63개 지역공동체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이로 인해 가축 7만5000여 마리가 폐사하는 등 경제적 피해도 커지고 있다.

반면 브라질에는 너무 많은 비가 내려 이구아수폭포 관광이 제한되고 있다. 농업대국 아르헨티나도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돼 식량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임석훈 남미 통신원 juanlimm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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