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신예, 비운의 천재 [으른들의 미술사]

수정 2026-11-04 15:53
입력 2026-11-04 15:53
안젤리카 카우프만, ‘요한 요아킴 빙켈만 초상’, 1764, 캔버스에 유채, 97x71㎝, 취리히 쿤스트하우스


●유명한 학자와 스물두 살의 화가

한 사람은 유럽 지식인 사회에서 명성을 얻은 학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이제 막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화가였다. 요한 요아킴 빙켈만(1717~1768)과 스위스 출신의 화가 안젤리카 카우프만(1741~1807)은 1763년 로마에서 만났다. 빙켈만은 고고미술사학의 창시자로서 고대 그리스 미술을 새롭게 해석하며 유럽 지성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반면 카우프만은 스물두 살의 젊은 여성 화가로,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며 화가로서의 입지를 넓혀가던 중이었다.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카우프만은 프레스코 화가였던 아버지를 도우며 일찍 화가의 꿈을 키웠다. 카우프만은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 등 유럽의 주요 미술 아카데미에서 여성 예술가의 제도적 지위를 넓힌 선구자였다. 또한 런던 왕립미술원 두 명의 여성 창립 멤버 가운데 하나로, 여성에게 닫혀 있던 사회 속에서 화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두 사람의 짧은 만남은 1764년 카우프만이 그린 빙켈만의 초상화로 이어졌다. 이 작품은 단순히 유명 인사의 얼굴을 기록한 초상화가 아니었다. 당대의 지적 권위와 새로운 예술적 재능이 한 화면에서 만난 특별한 순간이었다.

●고대 미술을 사랑한 남자와 그의 초상화를 그린 여성 화가



취리히 쿤스트하우스가 소장한 이 초상화는 학자의 권위를 과시하는 전형적인 초상화와 조금 다르다. 빙켈만은 화려한 관복이나 장식적인 소품 대신 편안한 옷차림으로 앉아 있다. 그의 시선은 정면을 향하지 않고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며, 얼굴에는 사색에 잠긴 듯한 차분함이 감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책과 종이들은 그가 학자임을 알려주며 빙켈만이 평생 탐구했던 고전 고대의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빙켈만은 1764년 출간한 ‘고대 미술사’를 통해 시대와 문명을 이해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했다. 오늘날 그를 고고학과 미술사학의 선구자로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카우프만 역시 이 초상화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는 사실이다. 당시 여성 화가가 전문적인 예술가로 인정받기 어려웠던 현실을 생각하면, 명망 높은 학자의 초상을 맡았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도약이었다. 실제로 이 작품은 그녀의 초상화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메달이 부른 비극

그러나 이 초상화가 더욱 애틋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빙켈만의 비극적인 운명 때문이다. 1768년 빙켈만은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여행했다. 당시 그는 빈에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환대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빙켈만은 그의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아 오스트리아 황실과 관련된 기념 메달을 받았다. 빙켈만은 이 메달을 상당히 자랑스럽게 여겼다. 문제는 그가 이 귀중한 기념품을 주변 사람 아무에게나 마구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그는 1768년 유럽을 여행하던 중 로마로 돌아가는 길에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 들렀다. 그곳에서 그는 요리사 출신의 범죄자 프란체스코 아르칸젤리라는 남자와 알게 되었다. 빙켈만은 며칠 만에 가까워진 아르칸젤리에게도 그 메달을 자랑했다. 아르칸젤리는 메달에 관심을 보였고 빙켈만의 방으로 향했다.

빙켈만은 6월 8일 숙소에서 아르칸젤리에게 칼로 습격당해 목숨을 잃었다. 일반적으로 메달과 금품을 노린 살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건의 구체적인 경위와 동기를 둘러싼 의문은 오늘날까지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인간의 아름다움과 조화의 이상을 발견하고, 그 가치를 유럽 사회에 널리 알린 학자가 이처럼 허망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 때문에 암살설과 배후설 등 여러 억측이 떠돌았다. 안타까운 그의 죽음은 유럽 지식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카우프만의 초상화 속 빙켈만은 여전히 책 곁에 앉아 고대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중이다. 카우프만은 이 초상화가 완성된 몇 년 뒤 빙켈만이 낯선 도시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으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한 사람은 그림으로, 다른 한 사람은 글로 아름다움을 영원히 남기려 했다. 어쩌면 이 초상화는 그들이 함께했던 짧은 시간에 대한 기록이자,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학자에게 보내는 조용한 작별 인사인지도 모른다.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받은 메달은 한 학자의 학문적 성취를 기념하는 영예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메달은 뜻밖에도 그의 마지막 여행에서 죽음을 부르는 미끼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아름다움을 평생 연구했던 빙켈만은 정작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는 그 어떤 아름다움도 지켜내지 못했다.

이미경 연세대 연구교수·미술사학자 bostonmura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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