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버스에서 집단 성폭행”…참담함 느낀 印 대법원의 선택은? [핫이슈]

송현서 기자
수정 2026-09-29 10:20
입력 2026-09-29 10:20
최근 인도 수도 뉴델리를 포함한 전국 각지에서 집단 성폭행 등 중대한 성범죄가 잇따르자 결국 국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인디아익스프레스 등 현지 언론의 28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인도 대법원은 델리에 있는 한 공원에서 발생한 미성년자 집단 성폭행 의혹, 이동 중인 버스에서 발생한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 등을 거론하며 직권심리에 착수했다.
직권심리는 누군가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청구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대법원이 사건의 심각성을 보고 스스로 사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대법원이 직권심리의 계기로 언급한 사건 중 하나는 지난 21일 델리 남동부 칼카지 사원 인근 아스하 쿤지 공원에서 발생한 17세 소녀 집단 성폭행 사건이다. 피해자는 경찰관을 사칭한 남성 3명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 비하르주에서는 10대 소녀가 성폭행당하는 영상이 유포되는 등 수도권뿐만 아니라 인도 전역이 성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또 다른 사건은 지난 8월 그레이터 노이다에서 델리로 향하던 침대형 버스 안에서 발생한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이다. 당시 16세 소녀가 버스에 탑승한 뒤 운전기사와 승무원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델리 카슈미리 게이트 인근에 버려졌다. 경찰은 피의자 2명을 체포해 조사 중이다.
대법원은 버스 집단 성폭행 사건에서 해당 버스가 약 47㎞를 이동하는 동안 경찰이 사건을 차단하지 못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재판부는 해당 사건에 대해 “2012년 니르바야 사건과 고통스러운 평행선을 그린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2012년 니르바야 사건은 23세 여성이 델리에서 이동 중인 버스 안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사망한 사건으로, 당시 인도 전역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가 발생했다. 이후 인도에서는 성범죄 관련 법률이 개정돼 성범죄의 범위가 확대되고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단순한 연대 표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도 밝혔다. 파르디왈라 판사는 “연대를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책이 되지 않으며,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불어 재판부는 최근 사건들을 계기로 공공장소에서 여성과 아동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가 충분했는지 살펴보기 위해 관계 당국에 관련 안전조치와 대응 현황을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대법원은 경찰과 행정당국의 책임 및 공공장소의 안전 확보 문제를 직권 공익소송을 통해 다루기로 했다.
주말 내내 이어진 대규모 항의 시위대법원의 직권심리 결정은 지난 주말 내내 이어진 대규모 항의 시위 속에서 이뤄졌다.
지난주 뉴델리 시가지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거리 행진과 델리대학교 학생 200여 명이 여성과 아동을 위한 안전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이다.
해당 시위는 주말 동안 전국으로 확산했고 28일까지도 곳곳에서 항의 집회가 이어졌다.
니르바야 사건 당시 인도 정부는 성폭행 범주를 확대하고 집단 성폭행 형량을 최소 20년형에서 최고 사형까지 대폭 강화하는 법 개정을 단행했다. 그러나 전문가와 여성 운동가들은 강력한 처벌 법안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가범죄기록국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인도의 일평균 성폭행 발생 건수는 80건으로, 법 개정 전인 2012년의 68건보다 오히려 증가했다. 가부장적인 사회적 시선과 피해자에 대한 낙인 때문에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사건을 고려하면 실제 범죄 수치는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인권 활동가 요기타 바야나는 지난 25일 AFP에 인도 사회에 여성을 범죄의 원인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 해결책인 인식의 변화를 위해 아무도 노력하지 않고 있다”며 “여성이 늦은 시간에 집 밖에 나가는 것이 여성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존재하고, 여성이 다른 남성과 함께 있는 것이 목격되면 남성들이 여성을 통제하려는 인식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인도에서 성폭행 범죄가 끊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로는 법 집행 기관의 역량 부족과 사법 지연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형사 전문 실피 자인 변호사는 “일반적인 성폭행 재판은 1심까지 7~8년, 대법원까지 가면 20년이 걸리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2024년 기준 법원에 계류 중인 성폭행 사건은 20만 건을 넘고, 그해 재판이 종결된 사건은 10%에도 못 미쳤다. 유죄 판결률도 2012년 이후 약 25%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성평등·젠더권리 활동가 푸남 무트레자 역시 AFP와의 인터뷰에서 성”범죄 예방은 사건이 발생한 뒤의 대응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범죄가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예방이 시작돼야 한다,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 디지털 공간, 경찰 시스템에서부터 예방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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