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이 거액 자산가로…36년간 ‘태국인’으로 위장한 중국인의 두 얼굴 [여기는 동남아]
수정 2026-09-25 15:58
입력 2026-09-25 15:58
중국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달아난 도망자가 무려 36년간 태국인 행세를 하며 40억원대 자산가로 살아온 사실이 드러났다. 파타야의 사업가로 위장했던 그의 집 지하에서는 골동품이 가득한 비밀의 방까지 발견됐다.
25일 방콕포스트와 파타야뉴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태국 경찰은 지난 13일 촌부리주 방라뭉군(파타야)의 한 주택에서 인터폴 적색수배 대상인 중국인 주즈산(67)을 체포했다. 태국에서 그는 ‘수찻 수라차이’라는 이름의 태국 국적 사업가로 알려져 있었다.
1990년 살인 후 도피…카렌족으로 위장해 태국 신분증 취득주즈산은 1990년 1월 중국 저장성 타이저우에서 벌어진 폭행치사 사건의 용의자다. 중국 당국은 그해 그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고, 2020년에는 인터폴 적색수배까지 내려졌다.
사건 직후 중국을 빠져나온 그는 미얀마를 거쳐 태국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2001년, 그는 태국 북부 딱주 폽프라군에서 소수민족인 카렌족 행세를 하며 태국 신분증을 손에 넣었다. 경찰 조사에서 그는 당시 약 5만 바트(약 200만 원)를 주고 신분증을 발급받았다고 진술했다. 이렇게 ‘수찻 수라차이’라는 새 이름과 국적을 얻은 그는, 이후 태국 여권까지 취득했다.
가이드에서 부동산 재벌로…자녀는 태국 국적까지새 신분을 얻은 주즈산의 ‘제2의 인생’은 거침없었다. 처음엔 관광 가이드로 일을 시작했고, 점차 사업을 키워 파타야에서 관광업체를 여럿 운영하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는 중국인 여성과 결혼해 태국 국적의 쌍둥이 자녀까지 뒀다.
수십 년에 걸쳐 그가 쌓아 올린 부는 상당했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방라뭉 일대에 토지 17필지를 비롯해 1억 바트(약 40억 원)가 넘는 부동산과 여러 대의 차량을 보유했으며, 최소 5개 회사와 연관돼 있었다. 특히 그가 관여한 한 회사는 지난 7월 자본금을 200만 바트에서 6000만 바트로 30배나 늘린 것으로 드러나, 경찰이 자금 출처를 추적 중이다.
집을 수색하던 경찰은 또 하나의 비밀을 발견했다. 주택 내부에 숨겨진 지하 방에서 다량의 골동품과 불교 부적이 무더기로 나온 것이다.
36년 만의 몰락…자녀 국적도 취소그러나 완벽해 보였던 36년간의 위장 생활은 결국 무너졌다. 중국 당국이 외교 경로를 통해 태국에 신원 확인과 범죄인 인도를 요청하면서 그의 정체가 드러났다. 경찰은 파타야 지방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따라 그를 붙잡았다.
그의 태국 국적과 주민등록은 취소됐고, 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의 태국 국적도 함께 말소됐다. 경찰은 그가 태국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한 증거를 수집한 뒤 중국으로 추방할 방침이다. 태국 경찰은 그가 어떻게 신분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는지, 당시 도움을 준 공무원이나 브로커가 있었는지도 조사하고 있으며, 유사한 방식으로 태국 신분을 취득한 다른 외국인들이 더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종실 동남아 통신원 litta74.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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