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잠수함 대신 한국산 고를까?…‘K잠수함’, 칠레서 승부 보는 이유 [밀리터리+]

윤태희 기자
수정 2026-09-21 20:30
입력 2026-09-21 20:30
40년 넘은 독일제 209급 잠수함 2척 교체 압박…차세대 전력 논의 속도
한화 ‘오션 2000’ 제안…ASMAR 공동설계·현지건조로 유럽과 경쟁
40년 넘게 독일제 잠수함을 운용해온 칠레가 차세대 잠수함 확보를 준비하면서 한국 방산업계가 수주전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화오션은 2000t급 수출형 잠수함 ‘오션 2000’을 앞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 설계와 현지 건조, 기술 이전까지 제안하며 유럽 업체들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칠레 군사전문 매체 인포디펜사는 지난 18일 한화오션이 서울에서 열린 ‘2026 국제 함정 기술 콘퍼런스(ISTC)’에서 오션 2000을 칠레 해군의 차세대 잠수함 후보로 소개했다고 보도했다. 한화오션은 완성된 표준형을 그대로 판매하기보다 칠레 해군의 작전 요구에 맞춰 설계를 최적화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칠레가 교체를 검토하는 함정은 독일 HDW가 건조한 209/1400L급 ‘톰슨’과 ‘심슨’이다. 두 잠수함은 1984년 취역해 40년 넘게 운용됐다. 수명 연장 작업을 거쳤지만 칠레 해군은 두 함정이 마지막 운용 주기에 들어갔다고 밝히고 후속 전력 확보를 위한 사전 투자 단계에 착수했다. 현재는 새 잠수함의 기술 요구 사항과 예상 비용, 설계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화오션이 내민 카드는 오션 2000이다. 한국 해군의 3000t급 도산안창호급(KSS-III)을 개발·건조하며 확보한 기술을 토대로 해외 시장을 겨냥해 설계한 2000t급 잠수함이다. 한화오션은 KSS-III를 단순히 축소한 모델이 아니라 항속 거리와 임무 능력, 승조원 규모, 운용비 등을 수출 시장에 맞춰 새롭게 균형을 잡은 플랫폼이라고 설명한다.
1만 해리 항해·리튬이온 배터리…칠레 맞춤형으로
오션 2000은 은밀성과 항속 거리, 공격력, 정보 능력, 확장성을 설계의 핵심으로 삼았다. 최대 잠항속도는 20노트(시속 약 37㎞) 이상이며 항속 거리는 1만 해리(약 1만 8500㎞)를 넘는다. 최대 운용 심도는 350m 이상이다.
특히 납축전지 대신 리튬 이온 배터리를 적용한다. 한화오션에 따르면 리튬 이온 배터리는 기존 납축전지보다 수명과 항속 능력을 크게 높일 수 있다. 개방형 아키텍처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표준 인터페이스도 적용해 도입국이 원하는 전투 관리 체계와 무장을 통합하거나 향후 성능을 개량하기 쉽게 설계했다.
칠레의 작전 환경도 오션 2000이 겨냥하는 부분이다. 칠레는 남북으로 긴 해안선을 갖고 있으며 작전 구역은 북부 아리카에서 남극까지 이어진다. 박성우 한화오션 해외사업단 상무는 지난달 인포디펜사 인터뷰에서 장거리 이동과 작전 지역 체류, 외부 지원 없이 복귀하는 능력이 칠레 해군에 중요하다며 오션 2000이 이런 조건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무장은 6개의 어뢰 발사관을 갖추고 어뢰뿐 아니라 대함·지상 공격 미사일과 기뢰 등을 운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한화오션은 장거리 타격 능력도 제안할 계획이다.
“같이 설계하고 만든다”…현지화로 승부
한화오션이 기술 성능 못지않게 강조하는 부분은 현지 산업 참여다. 칠레 국영 조선소 아스마르(ASMAR)와 협력해 공동 설계와 현지 건조를 추진하고 단계적으로 기술을 이전한다는 구상이다. 현지 기술자 교육은 물론 칠레 중소기업을 한화오션의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시키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는 완성된 잠수함을 한국에서 건조해 넘기는 데서 한 발 더 나간 전략이다. 칠레가 자국 조선 산업을 육성하고 함정 건조 역량을 확보하려는 만큼 잠수함 획득과 산업 기반 확대를 함께 묶겠다는 것이다. 한화오션은 지난 4월 칠레 아우스트랄대와 업무 협약을 맺고 현지 조선·해양 인력 양성과 기술 교류에도 나섰다.
협력 범위도 잠수함에 그치지 않는다. 한화오션은 칠레의 향후 호위함 사업에 4500t급 ‘오션 4500’을 제안하고 있으며 유지·보수·정비(MRO)와 극지 분야까지 협력을 확대해 칠레를 장기적인 해양 산업 파트너로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칠레의 차세대 잠수함 사업은 아직 본격적인 입찰 단계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칠레 해군은 사전 투자 단계에서 요구 성능과 비용 등을 검토하고 있으며 조선 업체에 공식 제안 요청을 보내는 절차는 추후 진행할 예정이다. 따라서 현재 단계에서 특정 업체의 수주 가능성을 판단하기는 이르다.
한화오션에는 칠레가 단순한 잠수함 수출 시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현지 공동 설계와 건조가 현실화하면 한국에서 축적한 잠수함 기술을 해외 조선소와 결합하는 새로운 수출 모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40년 넘은 독일제 잠수함의 마지막 운용 주기가 다가오는 가운데, 성능뿐 아니라 현지 산업 참여와 기술 이전까지 내건 ‘K잠수함’ 전략이 칠레의 선택을 받을지 주목된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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