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 5000만원 내고 설거지·농사…美 학생들이 ‘이 학교’ 찾는 이유 [라이프+]

윤태희 기자
수정 2026-09-15 15:00
입력 2026-09-15 15:00
스마트폰 내려놓고 농장 일·교과 수업 병행…노동의 가치와 자립 배워
명문대 지원서 차별화 기대도…전문가 “비싼 경험만으론 부족”
한 학기에 수천만원을 내고 설거지를 하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밭에서 옥수수를 수확한다. 미국 버몬트주의 한 학교에 모인 고등학생들의 일상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기대하는 것은 노동을 통한 자립과 스마트폰 없는 생활이다. 치열한 명문대 입시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할 경험을 찾으려는 마음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4일(현지시간) 버몬트주 버셔에 있는 마운틴 스쿨의 한 학기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미국 고등학교 11학년 학생들이 참여하는 이 과정의 학비는 약 4만 달러(약 5390만원)다. 학교가 공지한 올해 가을·내년 봄 학기 학비는 3만 9750달러(약 5350만원)로, 교재와 현장 학습 등도 포함한다.
학생들은 식사 후 조를 나눠 식기를 씻고 정리한다. 교실 청소와 채소 손질, 관개 시설 점검도 맡는다. 농장에서는 양을 몰고 소를 돌보며 장작을 팬다. 농장 일은 통상 주 8시간이며, 학기마다 하루는 수확이나 파종에 온전히 쓴다.
학업을 소홀히 하는 과정은 아니다. 대학 수준의 내용을 미리 배우는 AP 미적분 등 교과 수업에 환경과학과 수공예 같은 실습을 결합했다. 교직원도 공동 작업에 참여한다.
집에서는 안 하던 청소…공동생활을 지탱하는 노동 배운다
학교가 강조하는 것은 일상에서 잘 보이지 않던 노동의 가치다. 누군가는 식기를 씻고, 먹거리를 기르고, 시설을 관리해야 공동생활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직접 배우게 한다.
일부 학생은 집에서 집안일을 거의 해보지 않았다. 알렉스 마이어스 교장은 빗자루를 바닥에 대지 않은 채 쓸려는 학생을 보고 사용법을 알려준 적도 있다. 농장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 씨앗 한 알을 심을 구멍에 50개를 넣기도 했다.
새끼 돼지에게 먹이와 물을 주는 일을 맡은 에스텔라 휘트니는 한 번은 몇 시간이나 늦었다. 배고픈 돼지들을 본 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더 주의하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이 맡은 일을 미루면 다른 생명과 공동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배운 셈이다.
학생 맥스 셔먼은 설거지가 즐겁다고 말했다. 그가 일주일간 청소를 맡았던 퇴비화 화장실 앞에는 시설이 깨끗하면 담당 학생에게 고마움을 전하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농장 경험도 입시 경쟁력?…학교는 합격 실적 홍보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가 자립 교육만은 아니다. 에스텔라는 좋은 성적에 더해 대학 지원서에서 자신을 차별화할 경험을 얻고 싶다고 밝혔다. 일부 학생과 졸업생은 마운틴 스쿨을 명문대 진학에 도움이 되는 경로로 여긴다.
학교 역시 공식 인스타그램에 학생들의 하버드대·브라운대·다트머스대·UC버클리 합격 소식을 소개했다. 마운틴 스쿨은 매사추세츠주의 사립학교 밀턴 아카데미가 소유하며, 1980년대부터 한 학기 체험 교육을 운영해왔다. 마이어스 교장에 따르면 학생 약 30%가 재정 지원을 받는다.
다만 참가 자체가 입시 경쟁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입시 컨설팅 업체 아이비링크의 설립자 애덤 응우옌은 학생의 관심사와 맞고, 경험이 더 성숙한 에세이나 뚜렷한 학업 방향으로 이어질 때만 지원을 권한다고 설명했다. 비싼 활동을 맥락 없이 나열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휴대전화 맡기고 한 학기…화면 없이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또 다른 목적은 디지털 기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학생들은 학기 초 휴대전화를 학교에 맡긴다. 노트북은 주로 수업에 활용하며, 주요 건물의 와이파이는 밤마다 꺼진다. 기숙사에는 인터넷이 없다.
셔먼의 어머니는 아들이 전자기기 없이 지내는 여름 캠프에서 가장 행복해한다고 말했다. 가족에게 큰 비용 부담이지만, 그런 환경에서 한 학기를 보내길 바랐다는 것이다.
3박 4일간 혼자 야외에서 지내는 활동은 이 교육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브루스 브로는 과거 학생들이 곰과 마주칠까 두려워했다면, 요즘에는 혼자 자신의 생각과 마주하는 일을 더 걱정한다고 전했다.
학기 말에는 휴대전화를 돌려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다. 학생 캐시 스콧의 어머니는 딸이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청소와 집안일을 이어가길 기대했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 해온 보이지 않는 일을 딸이 더 깊이 이해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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