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9·천무 사지 말라더니 직접 만든다?”…유럽의 달라진 계산 [밀리터리+]

윤태희 기자
수정 2026-07-09 16:38
입력 2026-07-09 16:35
한화, 나토 방산포럼서 유럽 현지생산·기술이전 확대 제시
폴란드 천무 유도탄·루마니아 K9 거점으로 역내 장벽 돌파
유럽이 자국산 무기 우선 구매와 역내 생산을 강조하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현지 공장과 기술이전으로 시장 장벽을 넘고 있다. K9 자주포와 다연장로켓 천무를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럽 안에서 직접 생산·정비하는 방식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공급망 진입을 노리는 전략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7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나토 방산산업포럼에서 유럽 내 생산 기반과 기술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회사는 폴란드와 루마니아에서 추진하는 현지 생산을 발판으로 북유럽과 서유럽까지 사업 범위를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완제품 납품에 그치지 않고 현지 업체와 무기체계를 생산하고 정비하며 장기간 협력하는 방식을 앞세웠다.
이 같은 전략은 유럽 방산시장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각국은 무기 구매 예산을 늘렸지만 역외 기업이 생산한 완제품을 들여오는 방식에는 갈수록 까다로운 조건을 붙이고 있다.
자국 내 일자리와 생산시설을 확보하고 전쟁이나 공급망 차질에도 부품과 탄약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산 무기가 가격과 납기에서 경쟁력을 갖췄더라도 현지 생산과 기술 협력을 제시하지 않으면 장기 수주를 장담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유럽산 요구 뚫은 천무…폴란드서 유도탄 생산
노르웨이의 천무 도입 과정은 이런 흐름을 잘 보여준다.
노르웨이 정치권 일부에서는 한국산 천무를 구매하는 대신 유럽산 장거리 미사일 체계 개발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노르웨이 정부는 새로운 유럽 체계를 개발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든다고 판단했다.
노르웨이는 지난 1월 천무 발사대 16대와 유도탄 등을 9억 2200만 달러(약 1조 3900억원)에 도입하기로 했다. 천무는 최대 500㎞ 타격 능력과 빠른 납기를 앞세워 미국 록히드마틴의 하이마스를 제쳤다.
한화는 천무가 유럽산이 아니라는 약점도 현지 생산으로 줄이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4월 폴란드 방산업체 WB일렉트로닉스와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맺었다. 합작사는 천무에 사용하는 사거리 80㎞급 CGR-080 유도탄을 폴란드에서 생산한다.
폴란드는 발사대만 도입하는 데서 벗어나 핵심 유도탄까지 자국에서 만들며 장기 운용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한화도 유럽 안에 미사일 생산망을 갖추면서 역내 조달 요구에 대응하고 후속 수출에 활용할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폴란드는 2022년 이후 K9 자주포와 천무를 대규모로 도입했다. 한화가 폴란드와 체결한 K9·천무 관련 누적 계약액은 120억 달러(약 18조원)를 넘으며, 두 사업 모두 현지 생산과 기술 협력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루마니아에 K9 거점…나토 공급망 진입 노려
루마니아에서는 K9 자주포와 K10 탄약운반차를 생산·정비하는 유럽 거점 구축을 추진한다.
루마니아는 2024년 9억 2000만 달러(약 1조 3800억원) 규모의 K9·K10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한화는 현지 시설과 협력업체를 활용해 부품 조달과 조립, 정비 역량을 단계적으로 키울 계획이다.
한국에서 완성한 자주포를 보내는 기존 방식과는 다르다. 현지 기업이 생산 과정에 참여하면 루마니아는 기술과 일자리를 확보하고 한화는 유럽 수주전에서 요구하는 현지 기여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도 앞서 유럽 국가들이 무기를 구매하는 데서 벗어나 자국 방위산업 역량을 직접 구축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한화는 한국의 지속적인 무기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유럽 경쟁업체보다 통상 1∼2년 빠르게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여기에 현지 생산을 결합하면 빠른 납기라는 기존 강점을 유지하면서도 유럽산 우선 구매 움직임에 대응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나토 방산산업포럼에서 무기 판매에 머물지 않고 공동 연구·개발과 생산, 운용으로 협력 범위를 넓히는 ‘한·나토 방산협력 2.0’을 제안했다.
정부가 국가 간 협력과 기술이전을 지원하고 기업이 현지 생산망을 구축하는 방식이다. 유럽 국가들이 무기 도입 조건으로 생산시설과 기술, 일자리까지 요구하면서 정부 차원의 지원도 수출 경쟁력을 좌우하게 됐다.
K9은 폴란드와 핀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루마니아, 튀르키예 등 여러 나토 회원국이 운용하거나 도입하고 있다. 천무도 폴란드에 이어 에스토니아와 노르웨이로 시장을 넓혔다.
빠른 납기와 가격을 앞세워 유럽 시장에 진입한 K방산이 이제 현지 공장과 기술 협력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유럽산 무기 우선주의를 피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토의 장기 생산·정비 공급망에 얼마나 깊이 들어가느냐가 다음 수주전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윤태희 기자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