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예담촌에서 마주한 한국의 미 [두시기행문]
수정 2026-06-14 11:06
입력 2026-06-14 11:06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에 자리한 남사예담촌은 ‘가장 한국적인 마을’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지리산의 정기가 굽이쳐 내려오다 잠시 숨을 고르는 이곳은, 수백 년의 세월을 묵묵히 버텨온 옛 돌담길과 고가(古家)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예담촌’이라는 이름에는 ‘옛 담장 마을’이라는 의미와 ‘예와 선비 정신을 담은 마을’이라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이곳은,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잠시 비켜나 과거의 지혜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안식처다.
남사예담촌의 백미는 단연 마을 전체를 휘감고 있는 흙돌담길이다. 높이 2m가량의 담장들은 사람의 눈높이보다 높아 마을의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담장들은 단순히 경계를 짓는 역할을 넘어, 집과 집 사이를 잇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정을 나누는 연결고리였다.
흙과 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담장은 세월의 비바람을 견디며 정교한 무늬를 만들어냈고, 그 위로 넝쿨 식물들이 얽히고설켜 세월의 깊이를 더한다.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민 감나무와 꽃나무들은 계절마다 다른 빛깔로 마을을 수놓으며, 걷는 이들에게 사계절의 정취를 온전히 선물한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18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지어진 전통 가옥들이 옛 선비들의 정신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사대부 가옥의 기품을 느낄 수 있는 최씨 고가와 이씨 고가 등은 당시의 생활상과 건축 미학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산이다.
특히 남사예담촌은 과거 ‘박씨 집안 딸과 이씨 집안 아들이 혼례를 올리던 날, 사위가 처가 집의 감나무 아래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는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수령 700년이 넘은 부부 회화나무는 이 마을의 수호신이자,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변치 않는 인연과 평온을 빌어주는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여행의 즐거움은 맛에서도 완성된다. 산청은 지리산의 풍부한 산물이 나는 곳답게 남사예담촌 인근에서도 건강하고 정갈한 한 끼를 맛볼 수 있다. 산청의 대표 특산물인 약초를 활용한 비빔밥이나, 지리산 자락에서 채취한 나물들로 차려낸 소박한 산채 정식은 마을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식사 후에는 마을 한쪽에 자리한 작은 찻집에서 차 한 잔을 기울이며 담장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듣는 여유를 가져보자. 마을을 둘러싼 자연의 소리와 고택의 향기가 어우러져, 잊고 지냈던 내 안의 고요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글·사진 김희중 칼럼니스트 iong563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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