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폐광의 기적, 일제의 흔적을 지우다 - 광명동굴
수정 2019-08-08 09:24
입력 2019-08-08 09:24
“당시 조선총독부는 대한제국 고종황제를 압박하며 '광상조사기관'을 설치하고 금ㆍ은광산을 발견해서 이를 독점하려고 안간힘을 쏟았다. 광명동굴 역시 1912년 고바야시 토우에몬 일본인의 이름으로 광산 설립이 되었고 '광상조사기관'을 앞세운 일제의 광업권 침탈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광명동굴 소개글, 광명시>
일제는 조선통감부 설치 직후인 1906년 7월에 「광업법」과 「사광채취법」을 제정하여 금광 채굴권을 독점하였고 광명동굴 역시 ‘가학광산’이라는 이름으로 1912년부터 본격적인 채굴을 시작하였다. 1915년 12월 24일 일제는 한국의 지하 자원을 약탈하기 위하여 조선광업령(朝鮮鑛業令)을 공포하여 우리나라 국토 곳곳은 흡사 들쥐가 논바닥 헤집어 놓은 듯 알맹이만 쏙쏙 빼 빠져 버린다.
광복 후에도 근대화, 산업화라는 명목 아래 1972년까지 광명동굴에서는 금, 은, 구리, 아연과 같은 수많은 광물들이 채굴되었다. 특히 광명동굴은 황금광산으로 개발되었던 탓에 1955년부터 1972년까지 총 52kg의 황금이 나왔으며, 광산채광을 시작한 1912년부터 1954년까지는 수백kg 이상의 황금이 채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더구나 1972년 광명동굴 폐광의 원인이 자원 고갈이 아닌 홍수에 따른 환경 오염과 가학동 인근 논밭의 보상문제였기에 지금도 상당량의 황금이 동굴 안에는 묻혀 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광명시는 현재 동굴 안 총 길이 2.4㎞를 개발하여 관광객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동굴 안을 꾸며 놓았다. 동굴 안에는 분당 1.4t의 물이 쏟아져 내리는 황금 폭포를 비롯하여, 공연 및 전시가 가능한 예술의 전당, 황금궁전, 소망의 벽, 황금의 방, 불노문(不老門), 와인터널 등 다채로운 장소 등이 마련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동굴 탐험(?) 맛을 느끼게 한다.
<광명동굴에 대한 방문 10문답>
1. 방문 추천 정도는?
- ★★★☆ (★ 5개 만점)
- 시원함을 넘어 춥다. 반드시 점퍼나 스웨터를.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혹은 연인끼리도 좋다. 추워서 두 손 꼭잡고 포근히 안으면서.
3. 가는 방법은?
- 광명시 가학동 가학산 산 17-1
- 주말의 경우 교통 체증이 심하다. 대중교통은 화영운수 17번 (개봉역-철산역-광명시민체육관-광명역-광명동굴)
4. 특징은?
- 일제강점기 자원수탈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창조적인 변신이 놀랍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중화권 관광객을 비롯하여 내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오고 있다. 주말은 인산인해.
6. 꼭 봐야할 장소는?
- 와인터널, 황금폭포, 예술의 전당, 바람길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원조광명할머니빈대떡, 선매떡볶이, 홍두깨칼국수, 진미칼국수
8. 홈페이지 주소는?
- 요금 및 운영 관련 자세한 내용은 http://www.gm.go.kr/cv/index.do 으로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구름산, 서울푸른수목원, 충현박물관,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 광명가학동지석묘
10. 총평 및 당부사항
- 광명동굴은 인공동굴이다. 석회동굴과는 달리 동굴 벽 곳곳에는 노동자로 끌려온 우리 민족의 흔적이 선명히 남겨져 있다. 일제 자원 침탈의 아픔을 우리 힘으로 멋지게 복원해 놓은 곳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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