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특집] 인구는 급감하는데…전국은 600조원대 ‘철도 유치전’

한상봉 기자
한상봉 기자
수정 2026-09-25 17:14
입력 2026-09-25 17:14

5차 국가철도망 앞두고 지자체 건의 250개 노선
2072년 인구 3622만명 … 장기 수요 검증 필요
“선거철 공약 막고 장기 수요 검증할 제도 필요”

지난해 1월 20년 만에 운행을 재개한 교외선 열차가 선로를 달리고 있다. 운행 재개 후 1년간 이용객은 약 20만 8000명, 하루 평균 570명에 그쳤으며, 코레일이 고양·양주·의정부시에 청구한 9개월간 운송손실액은 48억 6000만원에 달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철도 유치 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인구 감소와 지역소멸이 현실화하고 있지만 신규 철도와 기존 노선 연장, 역 신설 요구는 오히려 늘고 있다. 특히 오는 11월 확정·고시될 예정인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을 앞두고 전국 지자체가 정부에 건의한 철도 노선은 약 250개, 요구 사업비는 6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부의 재정 여력을 크게 웃도는 규모여서 인구감소 시대에 맞춰 철도 투자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철도 8곳에만 15조원25일 국가철도공단 등에 따르면 최근 개통한 주요 철도사업에는 이미 막대한 재정이 투입됐다.


서해선 송산~홍성 구간 4조 1503억원을 비롯해 중앙선 안동~영천 4조 3413억원, 동해선 포항~삼척 3조 4297억원, 중부내륙선 충주~문경 2조 5150억원 등 천문학적 혈세가 들어갔다. 장항선 신창~홍성 전철화에는 8396억원, 평택선 안중~평택 7091억원, 동해선 포항~동해 전철화 4413억원, 대경선 구미~경산에는 2092억원이 들어갔다. 이들 8개 사업만 합쳐도 약 15조 6355억원에 이른다.

앞으로 들어갈 사업비도 만만치 않다. 김천에서 거제까지 174.6㎞를 연결하는 남부내륙철도에는 6조 8000억원 이상, 서대구~대구국가산업단지를 잇는 대구산업선에는 1조 5538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수도권에서는 안산·시흥과 서울 여의도를 잇는 신안산선에 4조 3055억원, 부천 대장과 서울 홍대입구를 연결하는 대장~홍대 광역철도에 2조 1287억원이 투입된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와 도시철도 연장, 역 신설 요구도 끊이지 않는다. 경기 고양시가 추진하는 인천2호선 고양연장에는 약 2조 830억원, 고양은평선 일산연장에는 약 2361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50년 뒤 인구 3622만명문제는 철도망 확대와 정반대로 대한민국 인구는 빠르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인구는 2022년 5167만명에서 2030년 5131만명, 2072년에는 3622만명으로 감소한다. 특히 철도의 주요 이용층이자 세금 부담의 중심인 15~64세 생산연령인구는 같은 기간 3674만명에서 1658만명으로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반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17.4%에서 47.7%로 높아진다.



지역별 상황은 더 심각하다. 통계청은 2052년이면 세종과 경기를 제외한 15개 시도의 인구가 2022년보다 감소하고, 2039년부터는 세종을 제외한 16개 시도의 인구성장률이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건설보다 무서운 유지비철도는 건설했다고 비용 부담이 끝나는 시설이 아니다. 선로와 교량·터널·역사, 전기·신호시설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고 차량 교체와 인력, 전력 등 운영비도 들어간다. 이용객이 줄어든다고 선로나 터널의 유지관리비까지 같은 비율로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지금 계획되는 철도 가운데 상당수는 행정절차와 설계·공사를 거쳐 2030년대에 개통할 가능성이 높다. 개통 이후 30~40년이 지나면 우리나라 인구가 3000만명대로 감소하는 시기와 맞물린다.

결국 지금 건설 여부를 결정하는 철도는 현재의 이용객뿐 아니라 30~50년 뒤 이용객과 운영비를 부담할 우리 아들·딸·손자·손녀 등 미래세대까지 고려해야 하는 장기 사회간접자본인 셈이다.

선거철마다 쏟아지는 철도공약그럼에도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는 철도 신설이 주민 숙원사업인 동시에 지역개발 수단으로 받아들여진다. GTX와 KTX 연장, 도시철도 신설, 역 추가 설치 등이 선거 때마다 단골 공약으로 등장하는 이유다. 오는 11월 발표 예정인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도 전국에서 약 250개 사업이 건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만 고속·일반철도 11개와 광역철도 29개 등 모두 40개 신규사업을 정부에 건의했다.

개별 지역에서는 각각 필요성이 인정될 수 있지만 국가 전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할 경우 중복투자와 장래 운영적자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구감소 반영한 평가 필요철도 투자를 단순히 줄이는 것만이 해답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인구가 감소할수록 철도역을 중심으로 주거와 상업·의료·공공시설을 모으는 압축도시 전략이 필요하고, 고령화가 심화할수록 대중교통의 중요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도 건설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자체를 인구감소 시대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의 경제성·정책성·지역균형발전 평가에 더해 2050년과 2070년 지역별 인구와 예상 이용객, 생산연령인구 감소율, 30~50년간 운영·유지관리비와 시설 개량비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방식이다. 신규 노선을 건설하기 전에 기존 철도의 증편이나 복선화, 환승체계 개선 또는 광역버스 등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는 대안으로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지를 비교하는 절차를 강화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정치권 개입 차단장치도선거 때마다 철도사업이 경쟁적으로 공약화되는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치권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신규 노선 또는 역 신설을 요구할 경우 장래 인구와 이용 수요, 생애주기 전체 비용 등을 독립적인 전문기관이 사전에 검증하고 일정 기준을 충족한 사업만 국가철도망 후보사업으로 검토하는 방안이다. 국가철도망에 반영되지 않은 철도사업을 선거공약으로 제시할 경우 예상 사업비와 재원조달 방안, 예상 이용객, 향후 운영적자의 부담 주체 등을 함께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조영원 일도엔지니어링 대표이사는 “철도는 한번 건설하면 50년 이상 사용하는 시설인 만큼 선거 때마다 지역 민원이나 정치적 요구에 따라 노선과 역을 늘리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독립적인 전문기관이 30~50년 뒤 인구와 이용객, 유지관리 비용 등 장기 수요와 재정 부담을 사전에 검증하고 일정 기준을 충족한 사업만 국가철도망에 반영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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