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와 철학의 만남···신간 ‘골 때리는 인문학’

최종필 기자
수정 2026-03-27 10:24
입력 2026-03-27 10:24
40가지 장면 통해 니체·하이데거 사유 풀어내
성과와 효율에 지친 현대인에게 던지는 질문
축구라는 역동적인 스포츠를 통해 우리 삶의 복잡한 문제들을 통찰력 있게 풀어낸 책이 발간돼 관심을 끈다. 단순히 경기 규칙이나 전술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인생의 철학적 질문들과 연결시킨 점이 인상적이다.
책 이름은 ‘골 때리는 인문학: 축구로 읽는 40가지 삶의 지혜’다. 축구를 몰라도 끝까지 읽게 되는 기묘한 인문학 서적이다. 전술 용어나 승패의 기록 대신 축구라는 그라운드 위에 우리네 삶의 풍경을 그려냈다.
K리그 출신 명왕성 교수의 첫 신간이다. 저자 명왕성은 2010년 K리그 드래프트를 통해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한 전직 프로축구 선수다. 그는 두 차례 전방십자인대 파열로 선수 생활을 접고 학문의 길로 새 출발해 스포츠사회학 박사로 꽃피운 인문학자다.
저자는 축구를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축구장의 찰나를 빌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축구를 철학과의 만남으로 비유해 생각을 깊게 한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오프사이드에서 칸트의 ‘자유’를 찾는다. 공격수가 상대 수비수보다 앞서 나가 골을 넣었지만, 깃발이 올라가며 무효가 되는 ‘오프사이드’를 통해 칸트가 말한 ‘규칙 안에서의 자유’를 이야기한다.
페널티킥에서의 고독은 하이데거의 ‘결단’을 인용했다. 수만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단 11m 거리에서 골키퍼와 마주 선 키커의 결정적인 순간을 하이데거의 ‘본래적 실존’에 비유한다. 오직 자신의 발끝으로 운명을 결정지어야 하는 키커의 고독은 우리가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내려야 하는 ‘결단’과 인문학적으로 연결한다.
라커룸의 말 한마디는 하버마스의 ‘소통’의 통로다. 하프타임, 패배의 기운이 감도는 라커룸에서 감독과 선수들이 나누는 거친 숨소리와 대화는 비난이 아닌 전술적 공유와 정서적 유대를 의미한다.
책은 끊임없이 묻는다. 성과와 속도, 효율에 매몰된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온몸으로 몰입해 본 적이 언제인가’를 물으며 멈춰 서게 만든다. 그가 ‘그라운드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이유다.
‘골 때리는 인문학’은 축구 팬에게는 경기를 보는 더 깊은 눈을, 축구에 무관심한 이들에게는 인문학이 얼마나 일상적인 도구인지를 일깨워준다. 책장을 덮고 나면 TV 속 축구 경기뿐만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선 일상의 장면 하나하나가 이전과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생각은 얕아지고 감각은 무뎌지는 시대, 이 책은 우리 삶을 다시 감각하게 만든다.
순천 최종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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